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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나>

<일본과 나>

by 박일호기자 2020.04.23

1985년, 강남의 미술학원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서울 토박이지만 변두리 태생인 내게 그곳은 별천지였다. 믿기 어려운 간극이 존재했다. 미술학원 생활이 좀 익숙해진 다음, 나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일제 물감과 붓을 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잠깐 빌려 써본 물감과 붓의 질적 차이는 선명했다. 착 달라붙는 느낌과 촉촉하면서도 매끄럽게 발리는 질감이 잊히질 않았다. 명필은 붓을 안 가린다지만, 나는 명필이 아니지 않은가. 아예 맛을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고심이 깊었다. 결국 부모님께 말씀드렸고, 얼마 후 내 손에 일제 물감과 붓이 들어왔다. 일본에 자주 다니셨던 지인께 부탁드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철없던 시절이지만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귓불이 뜨겁다. 더 이상 욕심내진 않았지만 물감과 붓 이외에도 일본 문구류의 질은 확연히 달았다. 친구들이 가져온 소위 신상이 등장하면 우리는 비교 분석하며 감탄과 찬사를 쏟아냈고, 그동안 쓰던 우리 제품의 후짐에 융단폭격을 쏟아 부었다.

1994년 코펜하겐 유학시절.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덴마크 물가는 심장이 벌벌 떨릴 지경이었다. 사람들이 앉아 마시는 길거리 커피와 데니쉬 패스트리의 가격을 본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나를 포함한 아시아권의 학생들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호주에서 온 친구들도 초 강력 절약 모드로 살았다. 반드시 도시락을 쌌고 커피나 음료도 인스턴트로 대신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유일했던 일본 친구는 4달 내내 점심은 물론 커피나 맥주까지 학교 인근의 카페에서 사 먹었다. “일본에 비해 너무 싸서”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매일 아침, 그 친구의 “소비”에 대한 반응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사 먹는 점심이야 좀 지나니까 놀랄 일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가 필름을 인화하기 시작하자 우리는 술렁였다. 찍기만 할 뿐 몇 달 뒤를 기약하던 우리들은 그가 인화하는 날을 함께 기다렸다. 사진을 돌려보며 부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급기야 그가 수업시간에 배운 아르네 야콥슨(Arne Jacobsen)의 병따개와 알바 알토(Alvar Aalto)의 꽃병을 사 들고 나타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놀라지 않기로 했던 것 같다. 경제 강국 일본의 위상을 깔끔히 인정해야 마음의 평화가 가능했다.

1996년 유학에서 돌아와 모교 근처에 작은 작업실을 얻어 일을 시작했다. 인테리어 분야에서는 소위 젠 스타일이라는 일본풍 디자인이 대세였다. 곧바로 닥친 IMF로 직격탄을 맞기 전까지 국내 인테리어 시장 경쟁의 무대는, 일본에서 잘 나가는 스타일을 누가 먼저 서울에서 재현하느냐에 있었다. 도쿄에 수시로 드나들었고 각 종 매체를 통해 그들이 치고 나가는 트렌드를 성마르게 뒤쫓았다. 우리는 정확히 일본에 몇 년을 뒤졌다며, 성공을 선점하고 싶으면 일본을 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줄을 이었다.

한 때 우리를 지배했던 나라에 대한 거부감이나 불편함과는 별개로, 디자인 분야에서 그들은 부럽고 또 부러운 대상이다. 유럽, 미국과 차별화된 일본만의 정체성을 무기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소위 성인지 감수성처럼 디자인 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들의 수치는 우리보다 월등히 높을 것이다. 그걸 증명할 사례들은 너무 많다. 우치다 시게루, 도쿠진 요시오카, 하라 켄야 등은 내가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디자이너이자 스승이었다.

디자이너와 디자인 교육자로서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일본과 차별화된 우리만의 아름다움, 일본과 비교할 수 없는 깊고 융숭한 철학적 가치를 속속 발견하고 감탄했지만, 이를 우리의 공간에, 가구에, 물건에 녹여내는 과정과 방법은 여전히 안개 속이었다. 일본은 저렇게 잘하고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수시로 질문하고 괴로워했다. 다행히 후배들은 나 보다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잘하고 있는 것 같아 위로받는다.

한 가지는 알겠다. 소위 386세대였던 나는, 우리의 것이 무엇이든 간에, 있는 그래도 보고 발견하고 다듬어 낼 마음의 여유와 자존감이 부족했다. 어린 시절 심어진 패배의식은 근거 없는 자신감만큼이나 위험하고 뿌리 깊었다. \

이제 2020년. 일본이 부자 일지언정 선진국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 지는 좀 됐다. 폐쇄적인 언론환경, 우리의 비관적 미래를 보여주는 공교육,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이 문제를 다루는 일본 정부의 태도 등. 급기야 코로나 19라는 전 세계적인 전염병 앞에서도 국민의 생명권과 올림픽의 경제적 성과를 끝끝내 저울질 한 일본 정부와 침묵하는 시민사회를 보며 그들을 우려한다. 부디 영국, 스웨덴에 이은 클러스터가 아니길 바란다.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분명하다. 대립, 경쟁이 아니라 연대, 공유를 선택하라. 미우나 고우나 이웃나라 일본의 위기는 우리의 위기다. 우한, 대구, 이탈리아, 뉴욕을 응원했던 그 마음 그대로 일본을 응원한다. 하지만 구호는 조금 다르다. 부디 깨어나라, 일본 시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