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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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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캐슬>의 결말이 궁금하다

<스카이 캐슬>의 결말이 궁금하다

by 양현모기자 2019.01.25

1970년대 중반, 내가 10살 때, 나는 꽤 드라마틱한 환경의 변화를 겪었다. 서울 충무로의 주상복합 아파트에 살다가 서울대학교 인근의 변두리 동네로 이사한 것이다. 시내의 아파트에 살 때는 최상위 자녀들만 다닌다는 국립대 사범대학 부속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에 다녔다. 우리 모두는 명문대 마크가 선명한 교복을 입었다. 어린 우리들에게까지 말을 높이셨던 담임선생님은 늘 반듯한 정장 차림이었다. 한 학년에 겨우 두 반, 교실에는 30여 명이 전부였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기사가 운전하는 까만색 승용차를 타고 등하교했다. 방과 후 함께 교실을 나섰던 친구들은 교문 앞에 줄 서 있던 차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 유치원 취원율은 약 2%. 하지만 나와 내 아파트 시절의 친구들은 100% 유치원을 나왔다. 아파트에는 늘 피아노, 바이올린, 국어, 산수 과목의 방문교사들이 있었고, 우리들은 모두 그중 한두 가지의 사교육을 받았다. 게다가 남산의 과학관, 식물원, 도서관이 지척에 있었다. 별들이 가슴으로 떨어져 안길 것 같았던 천체투영관(planetarium)을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로봇 태권 V를 상영했던 무지개 극장 등 문화적 자극을 주는 곳도 많았다.

그런데 이사한 동네에서 배정받은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무려 10반, 한 반에 70여명 이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했다. 나는 전학 후 며칠 동안 교실을 잘 찾지 못했다. 산 넘고 고개를 넘어 등하교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걸어서 통학했다. 동네에 자가용이 있는 집은 단 한 채도 없었다. 방과 후의 삶도 바꿨다. 우리는 운동장에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놀았다. 학교 담벼락 옆 친구의 집에서 넘어온 밥 먹으라는 외침 소리를 듣고서야 흙먼지를 둘러 쓴 가방을 들고 흩어졌다. 우리 중에는 사교육은커녕 점심을 굶는 아이, 한 겨울에도 얇디얇은 옷만 겨우 걸친 아이들도 많았다.

이민을 간 것도 아니고, 신분제가 살아있는 것도 아닌데, 결코 크지도 않은 나라에서, 같은 도시로 이동 한 것치곤 제법 큰 변화였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별 충격 없이 잘 적응했고, 이후 20년 넘게 같은 지역에서 살았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스카이 캐슬> 덕분에 어릴 적 살았던 그 주상복합 아파트와 그때의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들의 부모님은 이후 동부이촌동을 거쳐 압구정동으로 이사했다. 그들은 대개 국내의 명문대학과 미국의 사립대학을 나온 이후 전문직으로 자리 잡았으며, 비슷한 조건의 배우자들과 결혼해 서울의 강남에 살고 있다. 나는 종종 궁금하다. 만약 우리 부모님도 그들과 함께 소위 잘 나가는 부동산 시세를 따라 이사하셨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가지 않았던(못했던) 그 길은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종종 내 인생의 모퉁이에서 질문을 던진다.

<스카이 캐슬>에서 봤듯이 우리의 교육 현장은 부모가 모는 외제차 뒷좌석에 편안히 앉은 아이와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맨발로 나선 아이가 나란히 경주하는 마라톤 코스와 같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외제차에 함께 탄 부모나 맨발의 아이 부모 모두, 더 좋은 신발, 더 좋을 차를 위해 질주하느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40여 년 전 내가 겪었던 제법 커다란 삶의 변화. 하지만 변화 이후에도 내게는 희망과 기회가 있었다. 그때는 최상위층이라는 사람들의 비율이 극히 낮았고, 무엇보다 공교육 현장이 살아있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는 아예 과외 금지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대학 진학을 원했던 변두리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도 학교 공부만으로 진학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 시절에도 몰래 과외를 받는 등 반칙을 하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우리끼리의 리그만으로도 성취할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 개천에서 탄생한 용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최상위층은 물론,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조차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물불 가리지 않고 뛰는 죽음의 레이스, 그 레이스에서 앞만 보고 뛰느라 청춘과 중년의 삶을 저당 잡힌 불행하고 불완전한 사람들, 그들을 유혹하고 이용해 이미 공룡이 되어 버린 사교육 시장과 망가져 버린 공교육.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우리들의 슬프고, 끔찍한 초상이며, 드라마 <스카이 캐슬> 탄생의 배경이다.

<스카이 캐슬>의 결말이 궁금하다. 이 드라마는, 내겐 도저히 감정이입이 안 되는 특별한 사람들(재벌 2세, 우주에서 온 사람, 신데렐라 등)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카이 캐슬이건 다른 캐슬이건 상관없다. 그 공간이 특수할지언정 이 드라마는, 그 어떤 이유로도 명문대학 진입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서울 의대 꼭 가야 해요”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을 용인하고 희생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드라마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그 결말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와 우려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