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전문가칼럼

전문가칼럼

<독일과 독일 디자인의 위대함>

<독일과 독일 디자인의 위대함>

by 양현모기자 2019.04.25

독일 여행 중이다. 2019년 올해는 바우하우스(1919년 독일에 설립, 운영된 학교. 미술, 공예, 사진,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과 디자인 교육에 국제적인 영향을 미쳤다.)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 마침 독일의 여러 도시에선 디자이너라면 당연히 챙겨 봐야 할 매력적인 행사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여행이 원래 그렇듯 우리의 일정은 종종 계획하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오늘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나는 지금 사방 2-3km 내에는 다른 집이나 사람을 볼 수 없는 깊은 시골의 목조주택에서 이 글을 쓴다. 우리(나, 딸아이, 그리고 이 집의 주인인 독일 친구)는 오늘 아침 일찍 이곳을 떠날 예정이었다.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가 평화로운 마을의 새벽 공기를 날카롭게 갈랐다. 맨발로 뛰어나가 보니 혼비백산이 된 친구의 모습 뒤로 시뻘건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집에서 3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불은 순식간에 주변 나무들로 옮겨 붙었다. 사뿐한 바람 한 번이면 집까지 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바비큐를 할 때, 벽난로에 불을 지필 때는 그토록 섬세하고 오랜 손길을 요구하며 뜸을 들이더니, 어쩌면 이렇게 순식간에 몸집을 키울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불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 것 같았다. 나와 딸아이는 지하실에 있는 물통들을 들어 날랐고, 친구는 커다란 이불을 가져와 덮은 다음 그 위에 물을 쏟아 부었다. 사정없이 번지던 불을 겨우 조금 잡고서야 112로 전화를 했다. 딸아이는 언덕 위로 올라가 손을 흔들어 우리의 위치를 알렸다. 전화를 한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소방관들이 도착했다. 10명이 넘는 소방관들은 일사분란하게 화재현장을 진압했다. 그제야 우리 셋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진정할 수 있었다. 화재의 원인은 재였다. 어제 밤 바비큐 이후 남은 재에 불씨가 살아있었다. 무심코 재를 버렸다가 큰 불을 낼 뻔 한 친구는 놀라움이 진정되기 전에 죄책감에 몸을 떨었다.

독일인들의 철두철미함이야 워낙 잘 알고 있는 터라, 소방관들의 신속하고 차분하며 전문적인 대처는 어쩌면 예상했던 바였다.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불이 아니라 불은 낸 사람에 대한 그들의 대응이었다. 나이가 가장 많아 보였던 2명의 소방관은 우리를 집으로 데리고 내려와 의자에 앉혔고, 특히 심하게 몸을 떨고 있는 친구와 딸아이를 계속 안아주며 진정시켰다. “이제 다 괜찮다(Alles ist gut)”는 독일어를 100번도 넘게 들었다. 다른 소방관들이 모두 떠난 다음에도 1시간 이상 우리 곁에 머물던 그들은, 절대 안정을 취할 것, 오늘 하루 운전 금지, 계속해서 물을 마실 것 등 세 가지 명령(?)을 내린 다음 우리를 떠났다. 그러고도 오후 4시경, 한 명의 소방관이 다시 찾아와, 우리가 잘 있는지, 화재현장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재차 확인했다.

소방관의 명령처럼 우리는 이후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머물렀다. 화상과 찰과상을 조금씩 입었고 연기를 많이 마신 탓에 한동안 기침을 했지만 다행히 별일 없이 회복 중이다. 정신이 조금 들자 우리는, 우리의 안녕과 함께 이 집이 사라지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안도했다.

그럼 이제 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이 집은, 처음엔 공적인 일로 알게 됐다가 지금은 각별한 친구가 된 독일인 가족의 세컨드 하우스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집인데 집의 콘셉트가 특이하다. 1968년, 건축가였던 친구 아버지(Hannes Bolland)와 그의 아내는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만으로 이 집을 직접 지었다. 전기와 수도시설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플라스틱이나 일회용품은 사용할 수 없다. 물은 가까운 곳에 있는 강에서 길러 오거나 빗물을 모아 사용한다. 작지만 야무진 벽난로가 난방을 담당하고, 음식은 인디언들의 방법처럼 불을 지펴 만든다. 조명은 당연히 촛불이다. 달빛과 별빛, 바비큐 이후 남은 불빛만으로 충분할 때도 많다.

1960년대 당시 독일에서는 젊고 진보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환경문제와 에너지 절감에 대한 토론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내 독일인 친구 부모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발덱 캐슬(Waldeck Castle)은 이 지역(Hunsruck)을 중심으로 한 운동의 본거지였다. 캐슬에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수시로 모였고, 함께 행동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내 친구의 부모는 캐슬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집에 있는 모든 가구도 그들이 직접 만들었다. 집이 완성된 이후에는,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주중의 모던 라이프와, 인위적인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원시적인 주말의 삶을 살아 있는 내내 꾸준히 병행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내 친구들인 딸과 사위가 이 집을 물려받았다. 처음 이 집을 지을 때 지향했던 취지대로 사용한다는 조건이었다. 친구들은 이 집을 잘 유지했다. 나와 딸아이는 7년 전에 처음 이곳에 초대받았다. 도시의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곳의 모든 것들은 낯설고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놀랍고 감동적이고 신비로운 일들이 훨씬 많았다. 현대인 삶의 가장 큰 결핍은, 결핍이 없음에 있다고 했던가. 전기와 수도, 인터넷이 없는 곳에서의 생활은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에 비로소 눈 뜰 수 있는 시공간을 제공한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당연한 진리를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게 된다. 나와 딸아이는 종종 이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꼭 다시 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두 번째 방문에서는 또 하나의 특별한 추억까지 보태게 됐다. 친구들은 조만간 그들의 아들에게 이 집을 물려줄 계획이다. 다행히 아들 역시 이 집 탄생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으며 집을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그런데 오늘의 화재로 이 집이 사라졌으면 어땠을까?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글머리에 이야기 한 것처럼 올해는 바우하우스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복잡한 정치적 부침 속에서 두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고, 1933년 히틀러에 의해 마침내 폐교하기까지 겨우 14년간 지속된 학교지만, 바우하우스의 교수들이 구축해 낸 교육철학, 교과과정 등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바우하우스는 독일 디자인의 상징이며,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바이블과 같다. 하지만 나는 오늘, 바우하우스 전시를 보러 가지 못한 대신 의외의 곳에서 독일과 독일 디자인의 위대함을 본다. 바우하우스처럼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굵게 장식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서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을 찾아 이상을 실천했던 친구의 부모님과 지인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자산을 자식과 공유하고 교육하는 친구 부부, 국민의 안전뿐 아니라 감정까지 소중하게 보호하고 다룰 줄 아는 소방관들, 인구가 겨우 7,000명인 마을에도 2개의 소방서가 존재해 산림과 주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탄탄한 시스템, 범인들의 소소한 일상과 행복을 지켜주는 법과 규칙들. 바로 그런 것들이, 책이나 인터넷이 아니라 현지인과 함께 한 여행을 통해 비로소 배우게 된 독일과 독일 디자인의 위대함이다.
<사진 1> 화재가 나기 전 아침식사.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순식간에 사라질 뻔 했던 화재였다.
<사진 2> 처음엔 아담한 사이즈의 소방차에 놀랐다. 이곳에서 내린 10명의 소방관이 순식간에 화재현장을 진압했다.
<사진 3, 4> 집의 정경과 집 주인인 독일 친구의 곁에 머물며 위로하던 소방관의 모습. 불 뿐만 아니라 불을 내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진심어린 행동이 감동적이었다.
건국대학교 디자인대학 실내디자인전공
김진우, jinwookim@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