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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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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편 중앙탑면, 두 번째 이야기

제 6편 중앙탑면, 두 번째 이야기

by 양현모기자 2019.09.06

여행은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힐링의 수단이다. 단순하게 먹을거리부터, 체험, 즐길 거리 까지 다양한 방식의 여행들은 우리 삶의 활력소가 된다. 멀리 떠나지 않고 우리 지역 가까운 곳이라도 잠시 일상을 내려놓는 여행을 떠나면 힐링의 의미는 두 배가 된다. 이렇게 즐거운 여행에 의미까지 더해지면 어떨까? 바로 문화재 여행이다. 수많은 관광주제가 있지만 이 만큼 의미가 깊은 것도 없다. 단순하면서도 의미 있는 우리지역 문화재 여행, 떠나보자.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

주소 :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일대 및 가금면

주요 문화재 : 충주 고구려비(국보 제205호)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제1401호)
충주 장미산성(사적 제 400호)
충주 숭선사지(사적 제445호)
충주 누암리 고분군(사적 제463호)

우리 동네 문화재 특집 제 6편은 문화재의 보고, 충주 중앙탑면 그 두 번째 시간이다. 특히 6편에서는 충주의 대표적인 문화재라고 할 수 있는 고구려비를 비롯해 다양한 사적을 소개하려 한다.

충주 고구려비는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고구려비는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발견 당시 비면이 마모도가 심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특히 비에는 고구려 관직들의 이름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古牟婁城)’등의 글자가 보이고, ‘모인삼백(募人三百)’, ‘신라토내(新羅土內)’ 등 고구려가 신라를 불렀던 말들이 쓰여 있어 고구려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려비가 가진 역사적 가치는 상당하다. 고구려비는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다.

◆충주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제1401호)
봉황리 마애불상군은 상당히 신비로운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산비탈 두 곳의 커다란 암벽에 시기를 약간 달리하여 부조로 조각되어 있는 9구의 불ㆍ보살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감을 들게 만드는 문화재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한다.
상부에는 높이 3.5m, 폭 8m의 바위면에 불좌상 1구가 양각되어 있고, 하부에는 불좌상 1구와 공양상(供養像)ㆍ반가상(半跏像)을 중심으로 5구의 보살상 등 모두 8구가 새겨져 있다.
비바람에 의한 마멸로 부분에 걸쳐 윤곽이 뚜렷하지 않지만, 마애불상(磨崖佛像) 중 비교적 초기의 예로 한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역이라는 특수한 역사적ㆍ지정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이 마애불상군은 신라시대 불상조각의 흐름은 물론 고구려 불상의 경향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매우 귀한 자료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

◆충주 장미산성(사적 제 400호)
충주의 대표적 사적인 장미산성은 가금면에 있는 장미산의 능선을 따라 둘러쌓은 둘레 약 2.9㎞의 삼국시대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4권에 보면 ‘하천 서쪽 28리에 옛 석성이 있다’라는 기록과 『대동지지』에 ‘장미산의 옛 성의 터가 남아 있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1992년 조사결과 성 안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들을 통해 백제·고구려·신라가 차례로 이 성을 점령, 경영하였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북쪽에 있는 절인 봉학사 지역 일부를 빼고는 성벽이 원래 모습대로 남아 있다. 성벽은 돌을 대강 다듬어 직사각형으로 쌓았는데, 서쪽과 서남쪽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북쪽 정상부분의 성벽을 따라 있는 좁고 긴 군사용 참호는 주변 성벽의 재료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충주 숭선사지(사적 제445호)

신니면에 위치한 숭선사지는 고려 광종 5년(954)에 광종이 어머니인 신명순성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운 절이다. 절터 부근에서 발견된 ‘숭선사(崇善寺)’라고 쓰인 기와를 토대로 이곳이 숭선사였음을 알 수 있다.
사원배치는 전형적인 고려시대의 양식으로 남문지ㆍ탑지ㆍ금당지ㆍ영당지ㆍ회랑지ㆍ동문지 등의 건물지가 확연하며, 건물의 세부적인 유구는 건물 기단부의 화강암 석축기단ㆍ주초석ㆍ적심석ㆍ석축배수로ㆍ전돌포장, 답도, 탑의 적심, 우물, 온돌 등이 원래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어 고려시대의 건축유적으로서의 보존이 필요하며 한국건축사사료로서 매우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충주 누암리 고분군(사적 제463호)

신라말기에 조성된 이 고분군은 신라 진흥왕이 충주지방까지 그 영역을 확대한 후 중원소경을 설치하고자 귀척(貴戚)들을 이주시켜 한강유적을 경영하고자 하였던 사실을 증명하는 유적으로서, 가금면 누암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발굴된 26기의 고분 가운데 주류를 이루는 것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이고, 앞트기식돌덧널무덤(橫口式 石槨墳) 2기, 소형의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 石槨墓) 3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외방무덤(單室墳)임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짧은굽다리접시, 바리, 합, 항아리 등의 후기신라양식 토기류와 쇠손칼(鐵刀子), 덩이쇠(鐵鋌) 등의 철기루, 청동제띠끝장식(靑銅制帶端金具丘), 금동제귀고리 등의 장신구류, 가락바퀴(紡錘車) 등의 토제품이 있다.

참고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www.heritage.go.kr)
『취재:양현모기자/m1236@chol.com』